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초의(草衣)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다성(茶聖)이 아니다.

by 정상권 2025. 8. 26.

1970년대, 우리 차 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 속에서 차인들은 조선 후기의 초의선사를 '다성(茶聖)'으로 추대했다. 덕분에 많은 국민이 차에 관심을 두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현대 한국 차 문화는 초의선사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런데 초의선사는 활동한 시기는 19세기로 마치 그 이전에는 우리 차문화가 없었다는 의미로 비칠수 있다. 현재 초의를 추대하는 많은 차문화 조직은 하동을 차 시배지로 잘못 해석하거나, 동조하고 행사를 주관하면서 우리나라 차 재배와 이용 시기까지 잘못 인식하게 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사실 초의선사는 자신을 다성(茶聖)으로 받들어 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 초의선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피력해야 하는 점은 죄송스럽다.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 차문화를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초의 선사

 

1) 초의선사(草衣禪師)

초의는 다산에게 차를 배운 후 이를 통해 선비들과 교류를 하고 조선 후기에 차문화를 활성화시켰다.

초의를 우리 차문화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1970년대의 차인들이 초의가 다신전(茶神傳)’동다송(東茶頌)’을 펴낸 것과 여러 조선의 학자들과의 차를 통한 교류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초의선사를 우리 차 문화의 중흥조(中興祖)’라 부른다. 그들도 중흥조라 부른 것은 차의 개조(開祖)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니 우리는 한국 차문화의 개조를 찾고 우리 차문화를 재정립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2) 초의의 차 관련 책

 

 

초의를 우리의 다성으로 추대한 중요한 관점은 다신전(茶神傳)’동다송(東茶頌)’이라는 차를 편찬 했다는 이유가 크다.

 

그러나 다신전은 명나라 장원(張源)이 쓴 다록(茶錄)이다. 어떤 이는 초의가 다신전이라는 이름을 정한 것에 의미를 두자는 이도 있다.

그가 다신전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신전은 초의가 지리산 칠불암에서 청나라의 모환문(毛煥文)이 엮은 백과사전격인   『만보전서(萬寶全書)』에서 발췌한 것이다. 초의가 다신전으로 새로 이름을 붙이게 된 연유는 그가 본 『만보전서』에서 이 글을 다록(茶錄)이라고 밝히지 않고 다경채요(茶經採要)’라고 했기 때문이다.

 

다경채요의 뜻은 차에 관련된 중요 내용을 뽑았다는 뜻이니 책의 제목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초의는 내용 중 茶者 水之神水者茶之體: 차는 물의 신()이 되고 물은 차의 본체다.’ 라는 부분에서 다신전이라는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신전을 초의가 썼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3) 동다송을 썼다는 것으로 우리의 다성(茶聖)으로 추대한다?

동다송(東茶頌)은 초의가 정조의 부마 홍현주를 위해 쓴 우리나라 차에 관한 내용이지만 전체 내용의 대부분은 중국 다서의 내용을 인용하였고, 우리 차에 대한 내용은 몇 구문에 불과하다. 내용 또한 여러 문제가 있으니 차 관련 책자의 출판 만으로 초의를 우리의 다성으로 추대한 점은 재고해 보아야 한다.

 

중국의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이라는 세계 최초의 차 전문 서적을 썼다. 온갖 약초들과 혼합해서 차를 끓여 마시던 것을 차만으로도 좋은 음료가 된다는 것을 밝혀 차를 처음으로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책의 내용과 구성면에서도 그 이후 누구도 그를 넘어서지 못한 공적이 있다. 또 오늘날 차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었으니 다성은 당연한 호칭일 것이다.

 

현재 일본의 다성으로 추앙받는 센리큐(千利休)는 차에 관한 서적을 남긴 적이 없지만 찻자리를 미적으로 운영하는 능력과 그의 후손들이 그 형식을 지켜온 것으로 인정을 받고 그 자리에 올랐다.

 

초의선사는 차의 제다법은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서 배웠고 차를 통한 그의 삶은 유명인들과의 교류가 대부분이다. 학식이 뛰어난 학승이었으며 좋은 차를 만든 차인으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다성으로 받들기는 부족하다.

 

4) 초의는 차문화의 변호에 대해 깊이 이해했는가?.

그는 다신전에서 단지 이 책을 베꼈을 뿐, 내용에 담긴 잎차에 대한 깊은 이해나 제조 경험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칠불암 출처: 헤럴드 경제

 

그는 동다송  어떻게 옥부대(玉浮臺) 위 좌선(坐禪) 무리 가르칠까?”(何以敎汝玉浮臺上坐禪衆)라는 문장에서 칠불암 스님들의 차 만드는 방법과 음용법을 비난 하였다

 

지리산 화개동에 차나무가 40~50리에 걸쳐 펼쳐져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차 밭의 넓기가 여기를 넘어서는 곳이 없다. 이 골짜기에 옥부대(玉浮臺)가 있고, 그 아래 칠불선원(七佛禪院)이 있어 좌선하는 스님들은 늘 때 넘은 쇤 차 잎을 따서 햇볕에 땔감 말리듯 하여 솥에 나물국을 끓이듯이 삶으니 차가 진하면서 탁하고, 색은 붉으며, 쓰고 떫은맛이 심하다. 정말로 이르니 천하의 좋은 차가 속된 솜씨로 대부분 버려 놓은 바이다.

 

智異山花開洞茶樹羅生四五十里東國茶田之廣料無過此者洞有玉浮臺下有七佛禪院座禪者常晩取老葉乾然柴煮鼎如烹菜羹濃濁色赤味甚苦澁政所云天下好茶多爲俗手所壞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칠불암은 그가 스승을 따라간 신라시대부터 유명한 명망있는 고찰이다. 또 그가 베낀 다신전의 책이 칠불암의 것이다. 그런데 칠불암에서 왜 다 자라 센잎을 끓여 마셨는지 연유를 물어보지 않고 동다송에서 비난 한 것은 아주 큰 결례이다. 다음 기회에 이야기 하겠지만 칠불암의 스님들은 차를 만들 줄 몰라 이런 차를 마신 것이 아니다.

 

다신전(茶神傳)의 발문(跋文)을 보면 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무자년(1828) 여름, 스승을 따라 방장산(지리산) 칠불사 아자방에 들어가 이것을 베꼈으나 미처 정서하지 못하였다.

경인년(1830) 봄에 수홍상인이 차의 도를 알고자 하므로, 이 때문에 참선하는 여가에 억지로 붓을 들어 편을 마쳤고 아울러 그 단서를 적는다.

총림에 간혹 조주의 다풍이 있으나 모두 알지 못하는 바이므로, 따라서 이 내용을 베껴서 (우리 선가의) 후배들에게 보이니, (혹시라도 스승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이다.”

 

戊子夏 隨師入方丈山七佛亞院 謄此而下 未遑正書 至庚寅春 有修洪上人欲知茶道 爲此 禪暇日 勉强筆以終篇 幷記其端緖 叢林或有趙州風 而皆不知 所以抄示家外 可畏也

 

다신전은 차를 만드는 법, 마시는 법에서 자신의 차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 발문에서 그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차와 다신전의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는 고백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는 단지 이 책을 베꼈을 뿐 이차에 대한 분별력도 이런 잎차를 만들어 본적도 없다.

 

초의가 만든 차와 다신전 차의 차이

  다신전의 차 초의가 만든 차
차의 제조법 명나라 시기 잎차 제조법 당나라 시기의 떡차 제조법
음다법 우려 마신다. 끓여 마신다.

 

다신전과 동다송 출처: 네이버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등에서 다신전의 의의와 평가에서

 

『다신전』은 비록 초의의 친저(親著)는 아니지만「동다송」과 함께 제다법과 끽다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글이다. 이를 통해서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의 다풍이 유지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다인이자 선사였던 초의에게 있어서 다도의 실행은 곧 선수행[茶禪一味]의 실천이자 선수행의 완성이었기에, 『다신전』은 우리나라 선가(禪家)의 전통선다(傳統禪茶)를 보여주는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초의가 만든 차와 다신전의 차는 만드는 법과 마시는 방법도 다른 차라는 것을 몰랐는데 어찌 우리나라 다풍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

 

초의선사가 조선 후기 차 문화를 활성화한 공로는 분명하다. 그는 훌륭한 학승이자 차인이었다. 하지만 그를 유일한 '다성'으로 추앙하며 생기는 문제점들도 분명하다. 이제는 초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우리 차 문화의 진정한 뿌리를 찾고 그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칠불암 #우리 차문화 #정신문화 #초의 # 시배지 # 다신전 #무애다회 #홍익인간 #차문화 #차의 역사 #인문학